수필나부랭이방

새벽2시

옥수수다 2021. 10. 8. 18:34

 

                                                           새벽2, 시골 길

 

 

 

                                                                                                                                 찰옥수수

 

  엄마 만나러 가는 길은 햇살마저 좋았다. 고속도로를 달려 IC를 빠져 나오자마자 시골풍경이 한 눈에 들어왔다. 논둑 옆으로 흐르는 도랑의 물소리마저 마음을 평온케 했다. 유일하게 있는 아랫마을 슈퍼에 들려 엄마가 사오라는 밀가루와 뉴슈가를 사서 차를 달렸다. 동네가 바뀐 게 별로 없었다. 바뀐 게 있다면 집이 더 생겼다. 장성한 자식들이 분과해서 밭에다 집을 지은 듯 했다. 옛것과 현대식의 집들이 부조화 같으면서 어울렸다.

아랫마을이 끝나는 곳에 다다르자 다리 앞에서 서성거리고 있는 젊은이가 보였다. 스치면서 보는 순간 젊은 내가 머뭇거리며 있었다. 다리를 다 지날 무렵 서성거리던 젊은 내가 이내 한 발짝 힘겨운 걸음을 옮기는 게 보인다.

 

  오래전에 새마을운동 붐이 일었다. 농사만 지으며 먹고 살기 힘든 그때 정부에서 우리 마을에도 새마을공장 1호를 지어줬다. 나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곳에 취직했다. 일이 많은 시기에는 매일 잔업을 했고 휴일에도 거의 쉬지 못했다. 때로는 새벽에 일찍 끝나게 되면 귀가 길이 위험해서 난감했다. 그런 날이면 동료들 집에서 자고 싶은 마음과 집에 가서 자고 싶은 마음이 갈등했다.

그날도 바쁜 시기가 끝나고 일이 없어서 새벽에 퇴근하게 되었다. 하필이면 비까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동료가 자고 가라며 나의 팔을 잡았지만 동트기 바쁘게 집에 가서 쪽잠을 자고 출근하는 게 귀찮았다. 나는 우산을 빌렸다. 집에 가서 편안한 잠을 자고 싶은 마음에 우산을 움켜쥐고 길을 나섰다.

 

  새벽 2.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인적 없는 시골길. 우리 마을로 접어드는 다리를 건너면 왼편에 작은 논 하나가 있다. 논두렁 둔덕에 창고 같은 기와집이 보인다. 그 안에는 마을에서 공동으로 사용하는 상여가 보관되어 있다. 비바람에 문짝이 삐꺽거리는 소리가 마치 나를 태우기 위해 상여가 움직이는 것 같았다. 눈이 마주치기라도 하면 득달 같이 튀어 나올 것 같아 상여가 보관된 곳에 눈길을 주지 않으려 애쓰면서도 힐끔거렸다. ‘에이, 조상님이 돌봐주시겠지.’ 배짱을 부리면서도 상여가 날아 올까봐 조바심이 났다. 물러서기에는 이미 멀리 왔다. 불현 듯 밭 가운데 무덤이 듬성듬성 있다는 게 떠올랐다. 유행가 가사에도 없는 노래를 불러댔다. 높게 뻗은 옥수수 밭에 다다르자 노래가 뚝 멈췄다. 그 순간 동료가 자고 가라던 말이 떠올랐다. 겁 없이 길을 나선 나의 무모함을 탓하며 후회가 마구 밀려왔다. 우산 손잡이를 꽉 움켜쥐었다.

  시야가 확보되지 않는 옥수수 밭을 보자 두려움은 공포로 변했다. 누군가 나타나도 소리치거나 도망치기에는 마을과의 거리뿐만 아니라 동료들의 집도 멀었다. 순간 온 몸의 털이란 털은 다 곤두서는 것 같았다. 하필, 그 옆 개울가에서 마을 어른 한 분이 술에 취해 발을 헛디디셔서 돌아가신 적이 있다. 캄캄한 개울가에 무언가 둥둥 떠 있는 것 같아 눈을 여러 번 깜빡이며 쳐다보고 있던 그때, 후두두둑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홱 돌려 옥수수 밭을 노려봤다. 몇 명인지 몇 마리인지 모를 무엇가가 옥수수 밭에서 나를 노리고 움직이는 것 같았다. 옥수수 이파리에 맺힌 빗방울이 심하게 흔들리며 여기저기서 후두두둑거일수록 상여가 보관된 곳에서도 거칠게 문짝이 요동치는 것 같았다. 옥수수 밭은 좀처럼 끝 날 것 같  지 않았다. 길 한복판에 옥수수를 심어놓은 밭주인을 원망 할수록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는 연이어 들려왔다.

  그 순간 왜 무서운 생각이 더 났는지 모르겠다. 텔레비전에서 봤던 구미호의 한 장면이 옥수수 밭과 오버랩 되었다.

 

  [한 밤중, 잠자던 부인이 밖으로 나가는 걸 느낀 남편은 아내의 뒤를 밟는다. 어느 무덤가에 다다른 아내, 주의를 살피는 모습에 남편은 나무 뒤로 숨는다. 다시 산소를 열심히 파던 여자가 작은 소리가 나는 남편 쪽으로 고개를 홱 돌린다.]

 

  동생들과 이불을 부여잡고 숨죽이고 있었다. 아무 소리가 없자 고개를 삐죽 내밀다가 고개를 획 돌려 클로즈업 된 구미호의 얼굴과 내 눈이 딱 마주쳤다. 그 순간 동생들과 나는 비명을 지르며 다시 이불 속에 숨어 벌벌 떨었다.

  그 구미호가 옥수수 밭에서 형체를 숨긴 채 나를 노리는 것 같았다. 빗물 떨어지는 소리가 점점 가까운 곳에서 들렸다. 소름이 쫙 타고 오르면서 짧은 머리카락 끝에 매달려 있던 빗방울이 떨어지며 등골을 타고 흘러들어갔다. 빗방울은 얼음장처럼 차가워 오소소 닭살이 올랐다. 심장은 뭍에 올라온 붕어새끼마냥 팔딱팔딱 뛰었다. 옥수수 밭 끝에 다다라서야 참았던 숨이 파아앗 소리를 내며 뱉어냈다. 숨을 내쉬자 훔쳐보고 있던 구미호도 사라지듯 이파리에 맺힌 물방울도 잦아졌다.

마을 어귀가 보였다. 그런데 트럭 한 대가 갈림길에 서 있었다. 그 무렵 다른 마을에서 인신매매를 당할 뻔한 사건이 발생했다. 세워둔 봉고차로 남자들에게 끌려가던 딸을 본 엄마가 크게 소리를 질렀다. 때마침 논에 물을 살피고 오던 동네 어른의 도움을 받아 무사했다는 이야기로 한 동안 마을마다 떠들썩했다. 그 사건으로 인해 한밤중에 다니지 말라고 마을마다 공문까지 내려왔었다. 그 사건을 떠올리자 트럭에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거의 뛰다시피 하며 그곳을 벗어났다. 트럭 옆을 지날 때 식은땀인지 빗물인지 옷이 흠뻑 젖어갔다.

드디어 우리 집이다. 대문을 부술 듯이 꽝꽝 두드렸다. 잠결에 엄마가 문을 열어주며 기숙사에서 자고오지.’ 하며 걱정했다. 새벽 2, 심장을 쥐락펴락하던 어두움의 사투는 엄마를 만나서야 끝이 났다. 다음날, 트럭 주인이 동네 사람이라는 걸 알고 간밤에 옷이 다 젖도록 놀랐던 이야기를 하며 한바탕 웃었다.

 

  지금은 밭 가운데 멀쩡한 무덤뿐 아니라 이장하느라 파헤친 무덤도 보였다. 뭔 모르는 친구들은 공기 좋은 시골에 산다고 부러워하지만 사람의 발소리에도 놀라게 되는 시골이 되어가는 게 마음 편치 않았던 그 시절.

내려오는 버스 안에 어린학생을 보자 마을 끝까지 버스가 다니다는 게 안심이 되면서도 낯설게 느껴졌다. 그렇게 무서웠던 옥수수 밭에 그림처럼 예쁜 집 한 채가 있다. 동네 사람이 결혼을 해서 신혼집을 마련했고 그 옆에는 포도나무에 포도가 주렁주렁 달려있다.

  버스 꽁무니에 다리에서 망설이던 젊은 내가 호기를 부리며 걸어오는 게 보였다.  예쁜 집을 쳐다 보더니 걸음에 망설임이 없었다. 앞장서 길을 걷자, 우산을 쓰고 어두운 길을 걷는 젊은 내 뒤로 예쁜 집에서 따뜻한 불빛이 동네 어귀까지 따라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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