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나부랭이방 7

논두렁 밭두렁

논두렁 밭두렁 -찰옥수수 봄이 되면 시골은 바빠진다. 비닐하우스부터 시작하여 가을 농사까지 가려면 아이들의 고사리 손까지 빌려야 할 정도로 일손이 부족하다. 먼저 비닐하우스에 모종심기를 한다. 채소들은 밭에다 직접 씨앗을 심지만 참깨, 들깨, 고추 같은 씨앗 종류는 모종을 해서 어느 정도 자라서야 밭으로 하나씩 옮겨 심게 된다. 어른들이 밭고랑에 마늘을 심으면 아이들이 작은 발로 야무지게 흙을 덮어 밟아주며 싹이 잘 나오라고 햇빛과 지나가는 바람에게 부탁해 본다. 작년 봄, 잘 간수해 두었던 감자를 싹이 올라온 중심으로 뚝뚝 쪼개어 심어두면 초여름쯤 밭에서 수확하는 첫 번째 양식이다. 마지막으로 옥수수를 심고, 잘 자란 채소 모종을 옮겨 심고 나면 밭일은 얼추 마무리가 된다. 아버지가 논을 갈기 위해 쟁..

사진이 말을 걸어온다.

사진이 말을 걸어온다. 찰옥수수 지인이 사진 전시회를 한다고 연락이 왔다. 바쁘다는 핑계로 동문들과 한동안 만나지 못했다. 막상 길을 나서자 추적추적 비가 내렸다. 집으로 다시 되돌아가고 싶었지만 동문들과 오랜만에 만남이라 그날은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비 오는 날에 외출은 언제나 구질 거려서 번번이 약속을 취소했던 나였다. 빗길을 걷다보면 바지 밑단이 젖어서 질척거린다. 우산 안으로 비가 들이치면서 입고 있는 옷, 심지어 들고 있는 물건까지 젖어들면 마음까지 치덕거리는 것 같다. 그런 거리를 생각하니 신발 안에 양말이 치덕거리자 발가락이 움찔거렸다. 그날은 친구들이 그리웠는지 치덕거리는 양말이 된다고 해도 뒤로 미루지 않고 연락을 받자마자 택시를 탔다. 택시를 타고 비 오는 거리를 바라보는 기분은 상쾌했다..

추억, 또 다른 의미

추억, 또 다른 의미 찰옥수수 차가운 바람이 달빛을 흔들었다. 달빛은 아름답기보다는 서늘했다. 살 속으로 파고드는 달빛의 서늘함은 잠시 잊고 지냈던 아버지에 대한 미안함이 깨어나게 했다. 딸들의 애교에 아버지들은 피로가 풀린다는데 나는 아버지에게 그다지 살가운 딸이 아니었다. 언제나 일정한 거리를 두고 지내는 형식적인 딸에 불가했었다. 내가, 아버지에게 겨우 다가갈 용기가 생길 때 이미 아버지는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살아생전 한량이라는 애칭을 가질 정도로 놀러 다니는 걸 좋아했다. 빚을 내서라도 놀러 다니셨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후 남매들은 빚을 갚느라 힘들 정도였다. 그래서 그런지 아버지의 빈자리를 미처 느낄 새도 없이 빚에 허덕이자 그리움은 원망이 되고 그마저도 금세 무디어져 버렸다..

엄마와 호미

엄마와 호미 찰옥수수 엄마는 낡은 수건을 둘러쓰고 텃밭에서 호미질에 여념이 없다. 농작물을 심는 엄마 머리위로 7월의 태양이 작열했다. 엄마를 불러도 밭을 메냐고 대답이 없다. 다시금 엄마를 부르자 우리를 보면서 환하게 웃으며 쪼그리고 앉아있던 다리를 옮기는 걸음이 위태로워 보였다. 저녁을 먹고 평상에 둘러앉았다. 말린 쑥을 피워놓고 바람에 따라 가끔씩 콧속으로 연기가 들어와도 좋은 밤이었다. 도시에서 보지 못했던 별들이 하늘가득 촘촘히 박혀있었다. 별들에게 시선을 빼앗기고 있는데 옆에서 끙끙거리는 소리에 돌아다보니 엄마가 앙상해진 다리를 주무르고 있었다. 엄마 곁에 바짝 다가갔다. 그날 밤, 엄마는 처음으로 넋두리 같이 살아온 인생을 이야기했다. 할머니가 왜 그리도 엄마에게만 인색하고 모질게 했는지 모..

길 위에서 문학을 읽다.

길에서 문학을 읽다. 찰옥수수 봄바람에 엉덩이가 들썩거리고 햇살은 대지 위로 나른함을 내린다. 대지는 나른함에 무거운 눈꺼풀을 치켜뜨며 새순들이 피어난다. 꽃향기가 가슴을 살랑살랑 두드리며 간질거리던 어느 봄날. 가벼운 가방이라도 꾸려서 나들이 하고 싶던 그때 소식이 왔다. 동아리를 함께 한 친구들이 오랜만에 문학기행을 가자는 연락이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몇 해 동안 2개월에 한번씩 가던 기행이다. 임원들은 답사를 하고 온 사진을 토대로 기행에 관한 책자를 만들었다. 기행에 동행한 순간들이 지금도 내 책꽂이 한켠을 차지한 채 먼지가 쌓여 가고 있었다. 임원들의 생활이 바빠지고 답사는 물론 기행 보 만드는 것도 힘에 부치기 시작하면서 한 동안 문학기행이 중단되었다. 몇 년이 훌쩍 지나고 나서야 서로 얼굴보..

엄마의 계절

엄마의 계절 찰옥수수 엄마의 계절은 언제나 풍성한 제철 먹거리로 알 수 있다. 엄마는 바쁘게 밭일하다가도 허리를 펴면서 잠시 산을 살폈다. 산에서 피는 꽃을 보고 계절이 바뀌는 것을 직감했다. 뒷산을 바라보던 엄마는 바구니를 허리춤에 끼고 밭에 무언가를 심기위해 나갔다. 어느 날 늦잠을 자고 있던 내 귀에 아버지와 엄마가 내방 창가에서 투탁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당신은 산에 노란 꽃이 피었는데 감자는 언제 심으라고 아직도 밭을 갈아주지 않아요.” “재 넘어 최씨네 밭 갈아주고 한다니깐.” “내 집 일부터 해 놓고 남의 일을 해줘야지 당신은, 어찌 그라요.” “갔다 와서 해 놓을 게.” 아버지는 해주겠다는 말만 하고는 길어질 것 같은 엄마의 잔소리에서 달아나듯 쟁기를 챙겨 나갔다. 엄마 말을 귓등으로 ..

새벽2시

새벽2시, 시골 길 찰옥수수 엄마 만나러 가는 길은 햇살마저 좋았다. 고속도로를 달려 IC를 빠져 나오자마자 시골풍경이 한 눈에 들어왔다. 논둑 옆으로 흐르는 도랑의 물소리마저 마음을 평온케 했다. 유일하게 있는 아랫마을 슈퍼에 들려 엄마가 사오라는 밀가루와 뉴슈가를 사서 차를 달렸다. 동네가 바뀐 게 별로 없었다. 바뀐 게 있다면 집이 더 생겼다. 장성한 자식들이 분과해서 밭에다 집을 지은 듯 했다. 옛것과 현대식의 집들이 부조화 같으면서 어울렸다. 아랫마을이 끝나는 곳에 다다르자 다리 앞에서 서성거리고 있는 젊은이가 보였다. 스치면서 보는 순간 젊은 내가 머뭇거리며 있었다. 다리를 다 지날 무렵 서성거리던 젊은 내가 이내 한 발짝 힘겨운 걸음을 옮기는 게 보인다. 오래전에 새마을운동 붐이 일었다. 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