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짤이야기

정대리 그대리-2

옥수수다 2022. 1. 30. 15:19

처음이라는 단어는 언제나 설레임을 동반했다. 첫사랑처럼 말이다.

[신입사원이야]

하며 물어오는 선배의 말에

[예 신입사원 권지용입니다.]

하며 깍듯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일단 그들과 마찰이 없어야 했다.

아버지의 신신당부가 사원들에게 깎듯이 하라는 거였다.

그들이 회사에 인재이고 우리 집안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사람들이라며 어릴 때부터 귀에 딲찌기가 생길 정도로 들었던 말이다.

[네가 권지용이구아~]

다른 자리에서 나를 아는 양 인사를 하는 분도 계셨다.

단순히 친절함을 가지고 말을 걸어주는 거라는 것쯤은 안다.

낯선 환경에 대한 두려움을 이렇게 물어와 주는 사람으로 인해

비로서 서서히 경계를 늦춰지게 되었다.

친절로만 생각했던 이 남자가 나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지도 모른 채

그저 선배들에게 인사를 하느냐고 나는 정신이 없었다.

마치 인사하는 로봇처럼 고개를 연신 숙이기 바빴다.

[이거 가방인가]

누군가 물어오는 말에 누군지도 확인할 경향 없이 바로 대답했다.

[예 가방입니다.]

[어제 면접때도 멋있었는데 오늘도 어유]

하며 말을 걸어왔던 분은 부장님이었다.

그래도 난 자신 있게 당당함을 가지고 말했다.

[출근 첫 날이라 신경 좀 섰습니다.]

[이렇게 입고 일할 수 있겠어요.]

하며 오히러 찡 박힌 옷을 입은 나를 걱정하는 부장님이었다.

지용은 안심 하시라는 듯 확고하게 말했다.

[예 저는 지장없습니다.]

[내 젊었을 때 모습 같아]

라며 얼통달통 않은 노사원의 말을 들으면서도

반박은 커녕 그저 칭찬에 감사의 고개를 숙이기 바빴다.

아는 척 하던 선배는 나를 잊은 듯 무심하게 앉아 모니터를 보고 있었다.

그때는 선배가 어떻게 보면 괜찮은 사람처럼 느꼈다.

그 선배가 사수가 되기까지는 말이다. 과하게 다가와 인사하는 선배들 보다는

무심한 듯 앉아 자기 할 일하는 선배가 고맙게 느낄 정도였다.

여기저기에서 물어오는 사람들 때문에 부담스럽고 곤욕스런

아침을 맞고 있었기 때문이다.

부장님이 선배들 한분한분 소개시켜주기 시작했다.

무심하게 앉아있는 선배를 부장님이 불렀다. 

[정대리]

부장님 부름에 고개를 들어 쳐다봤다.

'정대리구나.'하며 나도 모르게 마음 속으로 선배의 호칭을 읊조렸다.

[아 예]

건성으로 대답하며 바라보는 모습이 시크해서 더 끌렸다.

난 고개를 숙이며

[잘 부탁드립니다.]

인사를 했다.

돌아오는 반응 보고 울컥했다.

도무지 표정을 읽을 수 없는 정대리였다.

사람을 보고 살짝 웃으며 인사를 받아주면

안되는 건가 싶은 마음이 들정도였다.

뭐라고 말을 하는 것 같은 데 옹알이 하듯 말을 하는 통에

뭐라고 반박도 대꾸도 못하겠다.

정대리의 반응에 다른 분들이 도리어 해명하고 있었다.

[저 친구가 말이 좀 없고 숫기가 없고 밥 많이 먹고 그러니깐 이해해요.]

부장님이 이런 말이 없었다면 내 속도 꼬였을 것이다.

난 내 감정을 숨기기 위해 무던히 애섰다.

얼굴에 감정을 드러내지 말아야 하는데 정대리의 해명을 들으면서

나도 모르게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하고는 다시 자기 일에 열중하는 모습이 왜 

또 좋게 보이는 지 모르겠다. 무심하든 일을 하고 있는 정대리가

눈에 거슬리면서도 끌리는 기분이랄까 마치

나에게 이런 푸대접을 한 사람은 네가 처음이야 하는 느낌이 들어서였다.

첫 출근하면 먼저 자리 정돈을 해야 일할 만 나기에 정해준 자리에

앉아 내가 준비해 온 것들을 꺼내려 할 때였다.

[권사원 복장이 이래도 됩니까?]

하사원의 말에 부장님은 이렇게 반박해 주셨다. 

[오늘은 입고 왔으니 어쩔 수 없죠. 벗고 일할 수는 없잖아요.] 

너무 튀게 입고 온 건가 싶어 눈치를 보게 되었다.

내가 이 권지용이 말이다. 누구에게나 당당했던 내가 오합지졸 

같은 사람들 앞에서 우왕좌왕 하고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신임사원인 나를 옹호하는 말에 선배들은 눈치만 보고 서 있었다.

부장님이 한 말이라 반박도 못하고 그저 쳐다 볼뿐이다.

그 모습들을 보니 왠지 부끄러웠다. 아침에 얌전히 입고 가라는

아버지 말을 들을 걸 하고 후회했다.

불쑥 내 옷을 건드는 사람 때문에 난 놀라서 쳐다봤다. 친구들 조차 

내 옷자락 조차 잡은 사람이 없을 정도로 나를 무서워 했는데

이 남자 뭔가 싶었다.

나의 팔을 휙휙 저으며 아주 못마땅한 표정으로 쳐다보는 모습에

내 인상이 찡그러져야 하는데 웃고 있었다.

회사의 지분이 이렇게 나를 자본주의에 굴복하게 만들고 있다고

생각하니 깊은 빡침이 왔지만 내 손은 바빴다.

여전히 난 책상 정리를 멈추지 못하고 정대리의

손길과 못마땅한 눈빛을 받으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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